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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걸린 천재의 만화 -고우영만화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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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걸린 천재의 만화
3주기 맞은 고우영 화백의 <고우영전>/살아 숨 쉬는 캐릭터, 현대 미술로 인정받아
[976호] 2008년 07월 08일 (화)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신문수(도깨비감투) “고우영의 만화는 넘치는 재치다.”
이두호(머털도사) “고우영 만화는 청량제다.”
윤승운(맹꽁이서당) “고우영은 어린이 같은 어른이다.”
홍승우(비빔툰) “고우영의 만화는 탄생이자 출발점이다.”


동료·후배 만화가들이 위와 같이 평가하는 고 고우영 화백은 중국의 고전을 당시대에 맞게 비틀고 각색한 <수호지> <삼국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다. 그는 포크 음악과 청바지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팽창기인 1970~1980년대 문학의 최인호, 음악의 이장희와 함께 대중문화 스타 3인방으로 불렸을 만큼 시대의 감성을 잘 읽어내려간 만화가였다. 사실적이기보다는 단순하고 거친 묘사로 재탄생한 <수호지>의 무대, <삼국지>의 조조, 유비와 같은 고우영만의 캐릭터들은 고전의 이야기 속에 당대의 현실을 적절히 녹여내 당대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고우영의 작품은 낯설다. 지난 4월25일로 3주기를 맞은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7080세대에게는 추억의 시간을, 그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는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안방 극장에서는 고화백의 원작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일지매>가 MBC에서 황인뢰 연출·이승기 주연으로 제작 되고 있다. 정식 판권 계약을 한 만큼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의 <일지매>와 달리 원작의 에피소드와 캐릭터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일간스포츠에서는 지난 6월2일부터 고화백의 <삼국지>에 컬러를 입혀 연재를 하고 있다. 이 작업은 고화백 생전에 그의 작품들을 복간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아들 고성언씨가 담당하고 있다. 아버지의 작품을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그이기에 복원 작업의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에서 7월16일부터 9월12일까지 열릴 예정인 <고우영 만화 : 네버 엔딩 스토리>(이하 <고우영전>) 전시는 고우영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가장 가깝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고우영전>에서는 고화백이 활동했던 1970~1980년대의 대중문화, 그의 원본 작품 및 희귀본 서적 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나름으로 재해석한 작업들도 확인할 수 있다. 고우영과 한 시대를 살았던 만화가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들을 두루 만날 수 있는 ‘만화가와의 릴레이 대화’ 또한 만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시간이다.

미술관의 만화가 재조명 작업은 이례적

<고우영전>은 만화가에 대한 재조명 작업에 미술관이 나섰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만화가 개인의 전 작품을 재조명하는 회고전 형태의 본격적인 전시가 미술관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 박재동 화백은 “고우영 선생 작품이 일반 만화 전시로는 많이 열렸지만 미술관에서 연다고 하니까 느낌이 다르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구별이 없어지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고, 그런 경계가 없어져서 우리가 보고 좋은 것, 느낌이 있고 볼만한 것, 그 모든 것을 한 테두리 안에서 같이 다루는 문화가 새로 생성되었다는 것이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고화백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미술계에서 이루어진 것은 그의 작업과 이미지가 현대 시각 예술에 던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만화 이미지가 순수 미술계의 새로운 상상력의 창구로 활용된 지 오래되었다. 특히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 작가들의 만화를 활용한 작업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알게 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마이크 세코스키의 만화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고, 무라카미 다카하시의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는 재패니메이션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긴 듯한 작품으로 외설적인 묘사임에도 소더비 경매에서 1천5백16만 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팔린 바 있다. 전시를 기획한 아르코미술관 김형미 큐레이터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고우영의 만화는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현대미술은 속도가 느리고 소통과 개입의 여지가 적다. 보여주며 말하는 만화, 특히 서사와 이야기가 탄탄하고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고우영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 미술이 보는 이와의 접점을 찾는 것을 도울 것이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만화가의 회고전에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번 전시에는 만화가 고영일을 비롯해 미술작가 강경구·윤동천·이순종·주재환, 프로젝트그룹 잼 홀릭, 디자이너그룹 박우혁&진달래, 영상디렉터 P.A.Son, 영화감독 김홍준 등이 참여해 고우영을 다시 보는 작업을 펼친다. 대중예술 영역 중에서도 영화나 음악 같은 경우는 선배 작가를 기리는 작업에 후배가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만화에서는 없었다. 특히 미술작가, 디자이너, 영상작가, 영화감독 등 예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 만화가에 대한 오마주를 바치는 작업에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다양한 장르의 후배 예술가들도 참여해

이 중에서 P.A.Son과 김홍준의 작업은 만화가 고우영의 영상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P.A.Son은 만화의 칸과 칸을 그대로 근접 촬영해 이를 동영상처럼 연속적으로 병렬해 보여준다. 특정 장면을 발췌한 후 몽타주처럼 편집한 영상은 만화의 칸 연결과 영상의 컷 연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잘 드러낼 것이다. 김홍준은 고우영의 유일한 영화 연출작인 <가루지기>를 재구성한 <가루지기 리덕스>를 선보인다. 영화는 비록 실패했지만 고우영의 만화적 이미지가 어떻게 영화 속 이미지로 연결되었는지를 잘 보여줄 것이다.

고우영은 신문 연재 만화에 첫발을 내디딘 만화가다. 고우영은 1972년 일간스포츠 창간과 함께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수호지> <삼국지> <열국지>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지금은 연재 만화가 없는 스포츠 신문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우영 이전까지, 만화는 신문과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여겨졌다. 그는 또한 이전까지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취급되던 만화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성인 문화의 영역으로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수호지>의 무대, 반금련·서문경 이야기에서 보여준, 당시로서는 과감한 성적 묘사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일간지 최초로 <식객>을 연재하고 있는 허영만 작가는 이에 대해 “스포츠 신문이라는 특수성 덕에 굳게 닫혔던 문, 감히 누구도 열 수 없었던 것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우영 선생이 아니었으면 누가 그것을 열었겠나. 고우영 선생이니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우영의 만화에는 캐릭터가 뚜렷이 살아 있다. 수많은 영웅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중국의 고전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독자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고전 속 인물들의 정형화된 모습을 탈피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박재동은 “고우영의 캐릭터는 어떤 성격의 일면이나 특징적인 것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과장해서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라고 평가한다. 아내를 호색한에게 빼앗긴 무능한 인물임에도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 순정파 무대나, 덕을 내세우지만 자기 속을 숨기는 비열한 유비는 고우영 캐릭터의 대표격이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가는 펜을 이용한 특유의 거친 필선, 강하게 눌러 찍은 먹의 자국, 고구려 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체와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준다.

7월이면 만나볼 수 있는 <고우영전>은 20년이 지나서도 대중의 관심 안쪽에 위치해 있는 고우영의 만화들이 어디서 나와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와 현대적 작업으로 재탄생된 그의 작품 속 이미지들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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